2. 소리
: 화명의 소리를 찾아서...
음악을 챙겨 듣지 않은 지 오래됐다. 챙겨 듣기는커녕, 인기가요도 잘 알지 못한다. 과거에는 무명 아티스트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디깅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첫 번째 이유는 에어팟을 분실한 것 때문이다. 동생이 선물해 준 에어팟으로 한동안 음악을 높은 만족도로 듣다가, (아마도) 버스에서 에어팟을 분실했다. 그 충격으로 “나는 음악을 들을 자격이 없다.” “자기 물건, 그것도 고가의 물건을 간수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음악이람?” 이라며 단념했다. 두 번째는 음원 플랫폼의 정액제 부담이다. 물가 상승으로 음원 플랫폼을 비롯한 영화, 스포츠 채널 스트리밍 정액제의 가격이 꽤 크게 올랐다. 과거에는 만 원 이하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만 원을 훌쩍 넘는다. 콘텐츠를 실컷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는 마치 뷔페와 같아서 수많은 음식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세 번째는 음악이 재미없어졌다는 것이다. 구질구질하고 촌스러운 가사들, 지겨운 가사들은 그저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외국 음악을 들었는데, 그나마 조금 나았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멜로디마저 거슬렸다. 듣기 좋은 멜로디를 구상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조금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따로 시간을 내어 차분히 앉아 음악을 듣곤 했다. 덕분에 온갖 팝 음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음악을 들었던 경험이 내 영혼을 뒤흔들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글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이 도대체 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팝 음악을 들었던 경험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리플리>라는 영화를 보면, '톰 리플리'가 '리처드 그린리프'의 대학 동창으로 위장하기 위해 취향을 연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재즈 음반을 주구장창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다른 감흥 없이 레코드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버티다시피 듣던 리플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짜로 재즈 음악을 즐기게 된다. 돌이켜보면, 팝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익숙해지고 좋아지는 경험이라고 할까?
요즘은 예전처럼 따로 시간을 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간간이 음악을 듣는 정도다. 평소에 즐겨 듣는 음악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편이지만, 가끔씩 셔플 기능을 활용해 예전처럼 잘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작업을 재생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모르는 아티스트가 내놓은 생소한 음악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일단 듣고 본다. 몇 번 듣다 보면 처음 들었을 때 포착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소리=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음악'을 위해 만든 음악보다 생활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때로는 음악처럼 들린다. 그게 음악이라서 음악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귀를 더 흥미롭게 자극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흡입하는 마찰음, 식당 직원의 친절한 말투, 대부분 사람들이 좋다고 느끼는 빗소리, 키보드 소리 등이 그렇다. 나는 화명에서 자주 듣는 소리들을 언급하고 싶다. 화명에는 아이들이 많고, 난 화명의 카페를 자주 가서 거기서 키보드로 작업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비를 직격으로 맞는 위치라 그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그러니까 나는 화명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음악을 대체한다고 느낀다. 음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이어폰을 쉽게 끼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귀로 들리는 것들이 모두 신선하고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을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음악이 우리의 시공간을 바꿔버리는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화명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갖고 있다. 아마 내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결제할 때는, 화명이 조금 지겹다고 느낄 때가 될 것이다. 에어팟을 새로 구입한다면, (그것이 최신버전이라면!) 화명이 진짜 내 동네라고 느낄 때일 것이다.
한 동네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음악 취향을 연마(?)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느 동네에나 반복적으로 보이는 풍경, 몸짓, 그리고 소리가 있다. 화명동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무엇이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화명동에서 자주 나타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리도 마찬가지다. 청과물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새로 납품을 받은 물건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는 소리, 부식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 화신중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거나 수다를 떠는 소리, 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각자 일터로 돌아가는 소리. 이와 같이 일상을 구성하는 소리들은 단순히 출근하는 길에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다. 동네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무탈하게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이자, 내 일상 또한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지표이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동네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모두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매개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동네에서 들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소리는 얼핏 들었을 때 매번 똑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반복과 변주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최근 천둥소리가 몇 번 강하게 내려쳤다. 당시 함께 있던 사람은 놀라워했다. 그러나 그 표정과 반응은 무서워하는 느낌만은 아니었다. 동물원에서 신기한 것을 본 아이들의 반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천둥소리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천둥이 함께 가져오는 변화된 환경에 겁을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정말 잘 듣고 살고 있는 걸까? '들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소리 전문가나 창작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여기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깜짝 놀라고, 또 다른 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가며, 번개가 내리치는 현상을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 왜?). 비단 번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말, 그리고 소리 전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는 모두 귀를 통해 들리는 정보를 고유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인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대략 80억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형태를 가질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 다른 종, 특정한 대상, 그리고 현상과 마주하며 소통을 이어간다. 생각해보면, 소통이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가 의미를 공유한다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그런데 놀랍게도 말을 주고받다 보면 결국 상대와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작은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작은 기적이 우리에게, 일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존재에게 나만의 소리를 건넬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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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Jakja missang 과 Sanma
* 위 글은 Sir. Jakja missang 과 Sanma가 한 문단씩 번갈아가며 쓰면서 완성했습니다
** 해당 글은 부산 북구 화명동 에세이집 <화명오감도>의 두 번째 꼭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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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지
: 화명의 낮과 밤
화명의 이미지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지’라는 단어가 너무 다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는 ‘화명의 풍경’으로을 해석하며 써보는 게 좋겠다. 화명의 풍경은 '경남' 같다고 느껴진다. 왜 하필 경남이냐면, 내가 경남 출신이기 때문이다. 타 지역도 그렇겠지만, 경남에는 다수의 신도시가 있다. 창원부터가 (아마도)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다. 시간이 흘러 마산의 가포, 진동, 그리고 창원의 북면, 김해의 장유 등이 신도시로 개발된다. 화명도 신도시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신도시의 풍경들은 엇비슷하다. 그래서 화명을 걷다 보면 경남의 어딘가가 떠오른다. 어디서 봤던 건물 같고, 어디서 봤던 상가 같으며, 어디서 봤던 구조처럼 보인다. 그래서 좋다. 화명이 부산스럽지 않아서 좋다. 비교적 정돈되어 있고, 연령층도 젊고, 거리와 건물들도 새것인 편이다. 스스로 아재 입맛에 올드한 취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거주지만큼은 깨끗한 도시에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이런 욕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머리가 아파서 그만두었었다.
오랜 시간을 장산역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지, 나에게 화명은 장산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생활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의미다. 장산이 아닌 다른 동네를 떠올려 보았을 때, 서면은 여가를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느껴지고, 센텀시티는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로 느껴지며, 연산은 아저씨들의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라고 느껴진다. 반면에 장산과 화명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인프라가 적당히 갖추어져 있고, 여가를 보내기 위한 시설도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내가 장산과 화명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서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서면, 센텀시티, 그리고 연산에 거주하는 이들이라면 각자 거주하는 곳이 생활에 적합한 장소라고 느끼겠지만 말이다. 조금 달리 표현하자면, 장산과 화명은 내가 오랜 시간 일상을 보내거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이유로 화명을 생활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깨끗한 화명의 거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게 있다. 화명의 밤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화명역 주변의 소위 신시가지 지역을 말한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사라진 거리에는 길거리 흡연자들이 등장한다. 주로 술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데, 그 모습이 꽤 위협적이다. 학생들이 마주했을 때는 충분히 무서울 수 있는 풍경이다. 신시가지를 살짝 벗어나 화명역 4번 혹은 6번 출구 쪽으로 나와 골목으로 가면 청소년들의 흡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흡연은 그들의 자유일 수도 있고, 동시에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유튜버들이 "참교육"을 한다며 "적어도 안 보이는 데서 피워야지"라고 겁을 주는 영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결국 뭐라고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못 본 척하고 지나친다. 사실은 조금 두렵기도 하다. 체육 입시생인지, 아니면 일찍 헬스를 시작한 청소년인지, 키와 골격이 좋고, 스포츠 가방을 들고 있는 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 가방 안에는 복싱 글러브나 유도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화명의 이미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 나는 부산이라는 공간을 지하철 노선도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다대포와 노포는 부산의 끝과 끝으로 이해되고, 서면은 중심이며, 북구와 사상구는 부산의 서쪽, 해운대구와 동구는 부산의 동쪽으로 이해된다.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실제 위치와 완벽하게 맞지는 않을 것이다. 요지는 부산의 지역 곳곳을 지하철역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화명의 이미지는 초록색 2호선 화명역이 된다. 실제로 거주지가 역과 가까워서 화명역이 집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마도 이 생각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꽤 많은 지하철 이용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신은 어떤가? 궁금하다.
대중교통 가운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지하철 노선도를 통해 부산을 파악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올해로 부산에 거주한 지 23년째이고, 대부분을 장산역 근처에서 살았다. 나에게 장산은 부산에서 동쪽 끝에 위치한 동네로, 동해선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양산은 서쪽 끝에 위치한 동네이고, 서면은 부산에서 중심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화명은 양산에 가까운 동네라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생각 없이 지나쳤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화명은 내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동네가 되었다. 어쩌면 집이 있는 동네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주민은 아니지만, 스스로 주민처럼 여기게 되는 동네, 나에게 화명이 그런 장소이다.
화명의 풍경은 자주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낮과 밤의 차이가 너무 크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바로잡아야 할까? 바로잡는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살았던 신도시인 장유와 북면도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도시의 문화라는 게 있을 것이다. 왜인지 문명이라는 말을 쓰고 싶기도 하다. 10년 전, 장유에서 봤던 어린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군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소위 말하는 신도시 키드다. 그들에게는 화명의 풍경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까? 마산 구도심에서 성장한 나로서는 여전히 신도시의 풍경이 신기하다. 화명은 그 풍경이 신비롭다.
화명에도 고깃집, 치킨집, 유흥시설이 밀집한 구역이 존재한다.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이 구역은 점점 활기를 띤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소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늦은 시각에 이곳저곳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을 보면, 화명이라는 동네가 비로소 숨을 쉰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는 음주와 유흥을 즐기는 것이 화명이라는 동네가 지니고 있는 본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화명이라는 동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지런한 풍경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편의상 화명의 낮과 밤으로 나누어 이야기하자면, 화명의 낮을 유지하는 암묵적인 약속을 지키는 대가로, 잠시나마 화명의 밤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보상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와 같은 보상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화명의 밤을 통해 화명의 낮 동안 눌려 있던 숨통이 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화명의 밤을 보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나와 마찬가지로 화명의 밤을 인내하며, 그 대가로 화명의 낮을 향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화명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보상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를 인내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동네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화명이야말로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동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이야기이고, 아마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그림자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화명이라는 동네가 나에게 있어 밤과 낮이 그럭저럭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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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Jakja missang 과 Sanma
* 위 글은 Sir. Jakja missang 과 Sanma가 한 문단씩 번갈아가며 쓰면서 완성했습니다
** 해당 글은 부산 북구 화명동 에세이집 <화명오감도>의 첫 번째 꼭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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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우연은 불과 6개월 전, 부산 북구로 이사 왔다. 그는 ‘북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북구는 부산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 몇 곳쯤은 있을 걸. 그리고 그는 북구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들에는 나름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연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ChatGPT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1. 전국의 ‘북구’들
대한민국에서 ‘북구(北區, Buk-gu)’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구역은 다섯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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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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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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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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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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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는 아니지만 ‘북구’라는 이름 사용) 울산광역시 북구
어쩌면 우연은 ‘북구’라는 이름에 이끌려 이곳에 왔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시선에는 부산의 지역구 이름들이 강한 성격을 띠는 듯 보였다. 남포동, 진구, 사상구, 연제구 등은 역사와 전통이 배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북구는 정체성이 옅고, 부산스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근본이 없는 동네’ 같았다.
2. 도시 팽창과 함께 성장한 주거·산업 혼합지
대부분의 북구 지역은 **도시 확장기(1960~90년대)**에 개발된 주거지와 산업시설이 뒤섞여 있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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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와의 인접성: 대구·부산·포항 북구는 모두 공단이나 항만, 철도와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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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아파트 단지 형성: 광주 북구(운암·문흥지구), 부산 북구(화명·덕천), 울산 북구(명촌·양정)
우연은 언제나 이런 동네를 좋아했다. 그는 어디서든 외지인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무도 그를 밀어내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는 분명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외지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리고 북구에서 그는 종종 ‘밀려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이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구라는 동네가 반드시 ‘밀려난 자들의 터전’은 아닐지라도, 그곳에는 확실히 많은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의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자 우연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3. 교통 요지
북구들은 대개 외곽과 시내를 잇는 교통 관문에 해당한다.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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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경부선 철도, 덕천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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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 대구역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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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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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국도 7호선, 울산항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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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북구: 영일대해수욕장, 포항항 북부
이동에 유리하다는 점도 북구의 장점이었다. 우연은 북구가 물리적으로 자신의 고향 경남과 가깝다는 사실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차가 없긴 했지만 택시를 타면 됐다. 화명 경부선은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도피로였다. 말하자면 우연은 늘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망칠 일이 없기를 바랐다. 삶의 공간에 작은 뿌리라도 내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4. 구도심보다는 생활 중심
북구는 문화·행정 중심지라기보다는 생활 거점이자 교통·물류 기능이 강한 곳이다. 대신 근린공원, 강변, 산지 등이 가까워 주거환경은 쾌적하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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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화명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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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무등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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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강동·정자 해변
우연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이러한 성향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부모는 늘 ‘좋은 집’, 정확히는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도심 밖, 집값이 비교적 저렴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지역성이 옅은 동네에 머물게 된 것이다.
우연은 그런 부모의 성향이 싫었다. 한동안은 부정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똑같은 선택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모를 그렇게 만든 환경과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라앉은 먼지를 다시 일으키는 일 같아 선뜻 시도하기 어려웠다.
5. 도시의 성장 방향
도시가 확장될 때 흔히 북쪽으로 뻗어나간 흔적이 ‘북구’라는 이름에 남는다. 서울에는 ‘북구’가 없지만, 성북구·강북구처럼 ‘북’이 들어간 이름이 같은 패턴이다.
우연은 성장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성장’이라는 단어를 거부했지만 더는 피할 수 없었다. 밥값조차 제대로 못 내는 처지에 자존심 따위를 지킬 수는 없었다. 사회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해 좋은 치약과 샴푸를 쓰고, 깨끗하고 쿠션 좋은 신발을 신고 싶었다. 이에 알맞은 근거지가 바로 북구였다. 다른 지역구는 이미 사회인들이 자리를 잡은 듯 보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반면 북구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북구의 문화단체, 공기관, 지원사업,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벼댔다. 성격과 맞지 않는 집단과 사람들 속에서 부딪힘과 위협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견뎌야 했다. 예전 같으면 이미 도망쳤을 것이지만 지금은 직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맞지 않는 사람과 시스템에 온몸과 정신을 비벼대면 묘한 쾌락이 있었는데, 이것이 살아가는 감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정리
한국의 ‘북구’들은 단순히 북쪽이라는 지리적 명칭을 넘어, 도시 성장 과정에서 후발 개발된 주거지, 산업·교통과 맞닿은 생활 기반, 자연환경을 품은 주거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연은 이제 자신의 이름을 돌파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우연에 맡기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우연’이 주는 선물 같은 순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물에는 더 이상 돈도, 설득력도, 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이겨내는 시간을 갖기 위해 북구에 왔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자신의 뾰족한 부분을 깎아내렸다. 북구는 그러한 변화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고, 그것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돈을 벌어 살아남는 게 먼저다. 돈이 최고다. 돈, 돈, 돈…”
우연은 화명생태공원 벤치에 앉아 중얼거렸다. 해는 짧아져 곧 어둠이 내렸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두워진 공원을 혼자 지키는 이는 우연뿐이었다.
필자소개
산마
침묵
공기와 접촉하면 부패되기 쉽습니다
식재료를 정리하다 눈에 띈 문장 하나
무엇이?
직접 짜서 고소해요 글자에 끌려 사버린 들기름
오늘 새로 뜯은 호두 한 봉지
맛은 모르겠고 몸에 좋다니 챙겨 먹는 방울토마토
말이라는 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옴과 동시에 변질되는 걸
목격했을 때
내가 본 것은 헛것일까
싶었던 찰나
냉장고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은
마음 안에 밀봉하기로 하자
한낮의 후끈함을 머금은 6월의 밤을
믿지 말기로 하자
여름이 다가올 때면
나는 공기와 너무 오래 닿았다는 생각
필자소개
김지은
‘좋은 시는 단어를 사랑하는 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끝자락>
점점 멀리 떠나는
점점 가까이 다가온
시작도 끝이 아닌
만나면 가장 따뜻한
빠르게 자라 매일이 낯설어
옷이 변하고
피부가 변하고
만나고 싶어 밖을 헤매는
길어지는 그림자를 보고 서
-
<오늘>
바닥이 나 쥐어 짜낸 클렌징폼
꼬여버린 머리칼이 막고 있는 구멍
막히지 않는 길은 빠른 만남
정오까지 사라지지 않는 영도
안개 약속에 늦는 버릇과 미안함 없는 사과
주고받는 게 의무가 돼버린 더치페이
필자소개
김시환
Lee Dong-jin
I’ve always had an obsession with film counts. It used to be much worse—if I didn’t watch at least one film a day, I felt like the day had been wasted. I hadn’t done anything. For what it’s worth, short films counted. As long as the title was listed on Watcha or Wikipedia, runtime didn’t matter. What mattered was the fact that I had watched it—and that I had recorded it.
This habit started around the time I discovered Lee Dong-jin, the renowned Korean film critic. I stumbled upon his podcast, Red Book Room, and was immediately taken. He was smart, articulate, and seemed to be thinking several layers deeper than anyone else. Even now, he continues to be respected by many, though he’s also the target of mockery in some corners. I still follow his work—less obsessively than before, but with enduring curiosity. There were times I honestly wondered: Is he even the same species as me? His intelligence and eloquence made me feel like an intellectually inferior lifeform.
And yet, I found one domain where I could almost compete with him: watching films. Of course, his depth of understanding was oceans ahead of mine—but the simple fact that we had both seen the same film felt like something. Watching films was the one way I could generate the same result as Lee Dong-jin, within the same 24 hours. So I started binging. I consumed films at theaters, at digital libraries, and eventually on OTT platforms, like ticking off levels in a game.
I became a cinephile late—around age 26 or 27. I had so much to catch up on, and I was constantly anxious about it. My feet wore paths in the floors of the Busan Cinema Center’s Cinematheque. I’d notice others like me, scurrying from screening to screening, and none of us looked especially happy. But after a few years, my film count started to add up. Eventually, I became one of those people who had seen a lot of films. A friend once told me I was “obsessed with cinema,” but I wasn’t. I just wanted to match Lee Dong-jin’s output for an hour or two a day.
That obsession has eased in recent years. I still watch more than most, but the need to count and tally has faded. That change began about one or two years ago, when I realized that “good” films weren’t always enjoyable—and “bad” or obscure ones could be surprisingly engaging. Sometimes, watching a forgotten flop or a bizarre YouTube film gave me just as much satisfaction as a Palme d’Or winner. I felt quietly proud. It felt like I had crossed some invisible threshold and found my own rhythm, my own taste. I was no longer swayed by critical consensus. I had become, in my mind at least, a cultural person with a center.
Still, old habits linger. On days when I feel unproductive or lost, I’ll force myself to watch something before bed—just to feel like I’ve done something with my day.
But is watching films truly a productive act? If productivity means actively creating or achieving something, then no. I usually watch lying down. My mind drifts. I often watch passively, even carelessly. Sometimes I miss half the film. Sometimes I fall asleep. In that sense, film-watching is deeply passive—and deceptively easy. The screen throws images at me, asking to be seen, but my eyes are elsewhere. Can this really be called living, or curating a life?
Reading is different. If I don’t engage, the page won’t turn. Reading is hard work. Which is why film-counting has become my last reliable input activity. It reminds me of high school, when I would stream online lectures while daydreaming in the study room, then pat myself on the back for “studying.” Perhaps that’s part of why I never did well in school.
This leads me to wonder: am I someone who can actually build a life? Or do I merely insert myself into preexisting systems and do the bare minimum to survive? For better or worse, that minimal effort has sustained me so far. Some people even call me diligent. I flinch when they do—but say nothing.
Lately, though, I feel like I’ve hit a wall. If I don’t move more—act more—there will be no results, and no income. I know I need to make a choice. And I keep coming back to this question:
If I stop watching films, what happens next?
Do I become a more active person—
or someone who simply stops doing anything at all?
필자 소개
Sir. Jakja Misang
기사 작위는 스스로 수여하였다.
기억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구나. 낮에 책을 편 아이에게 내가 한 말이구나 아이 앞에
놓인 것은 낫도 아니고 기역도 아니었구나. 아니었다. 놓였구나 이제 내가 놓였구나.
내가 처지에 놓였구나. 자비. 구해야 할 것. 그 사이에 기역이 있었구나. 기역이 포함
된 문장이 있었구나. 아이는 기억했구나. 기억해 놓았구나. 밤에 놓았구나 어두운 제
단 위에 낫을 그러쥐었구나. 입술의 밑바닥이 파르르 떨리도록. 낭창한 춤을 추었구
나. 지금부터가 너의 저주이구나. 지금부터. 네가 놓아 둔 나의 처지는 여기부터구나.
낫이 기역이구나. 낫이 기역이고. 낫이 니은이고. 끌도 기역이고. 끌이 히읗일 때 네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돌아보면 망치와 갈퀴와 넉가래가 또 기역이다. 언
젠가부터 기역은 가려움. 기역은 목공. 기역은 어쩌면 또 만날 친구. 이제 니은과 디
귿과 미음 그런 친구들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교 시간의 하교처럼 바사아자차
카타파하 그러나 기역은 지금 기역. 마음이 가려운 기역은 낮의 아이가 돌아가는 집
이다 기역은 또 어머니이다. 가려움이라는 단어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어
머니의 주걱질이 기역이다 어떤 기역은 낫보다 끌보다 갈퀴보다 날카로워서 아이는
빈 집에서 어머니를 따라하려다 손을 벤다 기역인 문장에는 기역이 포함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머니인 문장에는 어머니가 있다고 아이가 떼를 쓴다. 기역은 빈 집이라
고 말해 주어도 기역은 아이 놓고 어머니도 모르는 저주구나. 밤이 이제 또 낮이구
나. 너의 저주는 낮이면 또 밝구나.
필자소개
김현수. 마산에서 시를 씁니다. 마산에서 시 모임 <시럽> 도 참여합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김현수의 <이곳은 숲이 아닙니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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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류의 삶
시인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괴롭다.
모든 문장이 동사로 끝나는 시를 쓰라는 청탁을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오늘은 원고를 넘기기로 한 날이다.
차라리 길거리에 나가 동사(凍死)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시인은 중얼거렸다.
문제는 지난 일주일 사이에 최고 기온이 20℃를 기록할 정도로 날이 풀렸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을 지난한 과정을 떠올리자니,
시인은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지루한 고통이다.
급기야 시인은 동사를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동사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날밤을 새우며 노트북 앞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고,
오후 10시 즈음에 잠자리에 들어,
저속노화를 위한 실천을 할 수 있었으리라.
야간노동은 1급 발암물질이라던데,
문자 그대로 시가 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혹자는 문학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아마 생전에 많은 선인세를 받았으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까지 동사가 떠오르지 않자,
시인은 동사가 존재하지 않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상상한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동사를 입에 올리지 않으리라.
시인은 굳은 다짐을 한다.
이제부터는 ‘천재 시인이 재능을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 대신,
‘천재 시인이 재능을 숨김’이라고 말할 것이며,
무언가에 대해 감탄할 일이 생겼을 때에는,
쓸 데 없는 동사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지존’이라는 단어 하나로 종결할 것이다.
동사가 없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은 생을 갉아 먹는 시에 굴복하는 대신,
시에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왜 저항하느냐고?
그것이 시인이니까.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아래와 같은 시를 쓴다.
동사입니다.
형용사가 자살했습니다.
끊임없는 투고.......
형용사는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문예지......
문예창작학과.......
문단 권력......
책임을 묻겠습니다.
필자 소개
Sir Jakja Misang
시 제목은 ‘이류의 삶’인데,
정작 시인은 ‘사류의 삶’ 정도 살고 있다.
기사 작위는 스스로 수여하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계절
아무도 보지 않는 상영회
아무도 보지 않는 시집
아무도 보지 않는 웹진
아무도 보지 않는 전시
아무도 보지 않는 스토리
아무도 보지 않는 북토크
아무도 보지 않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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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QR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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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지도
아무도 보지 않는 포스터
아무도 보지 않는 평론집
아무도 보지 않는 뮤직비디오
아무도 보지 않는 책갈피
아무도 보지 않는 메뉴판
아무도 보지 않는 디자인
아무도 보지 않는 스티커
아무도 보지 않는 이력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자기소개서
아무도 보지 않는 얼굴
아무도 보지 않는 몸
아무도 오지 않는 계절
아무도 오지 않는 겨울
필자소개
산마
얼굴과 얼굴
대구에 가본 적 있니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
뭐에 홀린 듯 기차를 거꾸로 탔던 어느 날에는
동대구역에 발을 디디며 새 차표를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구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일까 없는 사람일까
이번 여행은
선명하게 대답하기 위한 것
대구의 지하철 손잡이는
길이가 제각각
그 아래로 아이와 어른의 얼굴들이
손을 뻗는다
나의 첫 평양냉면은 대구에서 시도해 보기
대구의 부산안면옥은 나처럼 부산에서 왔다는데
테이블마다 얼굴이 두 개 혹은 서너 개
동그란 그릇과 시선을 맞대다가 얼굴을 들어보니
앞자리에 모르는 얼굴
이제 내 테이블에도 얼굴이 두 개
너무 많은 얼굴이
내 얼굴을 가로질렀다고 느껴질 때쯤
서둘러 여행을 끝내기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에게
사진 한 컷 부탁하기
아침부터 강풍이 불었다던 부산에는
아직도 바람이 휘몰아치고
가로등이 고장 난 오르막길을 견뎌야
고개를 내미는 집
어둠의 몸집이 커지는 기분에 주변을 둘러보아도
얼굴 한 점 없다
깜깜한 사위에 작고 붉은 불빛
동네를 지키는 오래된 자판기
자판기 커피와 자판기 우유를 잘 섞으면
완벽한 액체가 탄생하는데
양손에 종이컵을 하나씩 쥐고서
옆에 얼굴 하나 더 있었으면 생각하는
-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옛집 뒷방으로 돌아와 산다는 것은
열심히 실패한
늙은 벽지와 괴팍한 창틀을 가진
5평 방에 55인치 TV를 욱여넣는
로라반정 1알과 라제팜정 반 알을 먹는
약을 먹지 않기 위해 약을 먹는
원룸에서 벗어나 원룸으로 돌아온
필사적으로 평온을 찾아 헤매는
나를 새로 살 수는 없어서 침구를 새로 사는
부지런히 게으른
대출받지 않는
침대 뒤 창을 열고 영원한 잠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견디는
0이 된
산책을 모으는
모은 산책이 단잠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
포효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낯선 나를 모른 척하는
문을 닫는
“수진은 아파트 공용 스피커의 전선을 끊어버린 적이 있다. 제 목숨을 끊을 수는 없어서 저지른 일이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는
방 안에 있는 집에 사는
나를 기다리는
필자소개
김지은
‘좋은 시는 단어를 사랑하는 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초등학교를 돌며 쓴 일기
오늘은 시를 썼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하나 더 쓸 일도 있었다. 기분 좋은 일들이 있었다. 오늘 한 일 중에는 출근도 있었다. 얼음을 왕창 넣은 커피를 사는 일도 있었으며, 왕창에서 지출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를 잠시 떠올리는 일이 있기도 했다. 벌컥 마시는 일도 물론 있었다. 어느 사람이 하는 말들을 듣는 일 다음에는 어느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규칙을 지키는 일이 있다가, 지키는 일에 규칙의 배제를 밑장처럼 슬쩍 깔아놓는 어느 아무개처럼. 한편 오전 중에 생각을 좀 해 보라는 말을 하는 일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말을 듣기 전의 오늘 중에 있었다. 무언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는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공영주차장, 푸른 표지판. 어제보다 조금 더 점에 가까워지는 주차선. 아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인 차량들. 그 중에 어느 하나가 어떤 하나의 차량이군, 납득하는 일이 있었고 사람이 아닌 것의 뒷모습에서 얼굴을 찾는 일도 있었다. 사람의 그런 경향성에 대해 말해 준 그 사람 얼굴은 모른다는 일이 약간 웃긴 것 같다고 말할 법 한 사람 얼굴이 떠오르고 조금 뒤면 시가지 내부의 도로들을 주행하는 차들이 생각보 다 빠르다는 생각과 마주칠 것이었다. 합금과 타이어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들과 내가 조금 더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 한 날 한 시에,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온몸이 굳 어버리는 일도 있을 수 있었다. 완전히 굳어버리고 그렇게 깊이 빠져 버리면 뜨지 못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든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낫을 들고 기역을 쓸 줄 모르는 사람처럼. 잊은 것을 또 잊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시험해 보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했다. 숲의 그림자 속에서 앞선 친구의 등으로 옮겨 타는 약간의 빛무리를 보았을 때를 떠올리다가 어느 길에서 맡았던 것 같은 어느 냄새를 떠올리다가 말똥의 형태를 떠올리다가 말도 말똥도 보이지 않는 흰 자갈길을 떠올리고 역 마차와 도로의 변화와 공영 주차장을 떠올리자. 무언가 너무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 한 일이 다 이런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분은 시험하는 일을 잊고 좋았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오늘은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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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 곤
나는 아주 오래 누워 있었다 그러나 칼은 이제 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계속
주어지는 흰 면발들을 끊어 내는 일
아주 오래 했다 나와는 아주
상관 없이
그가 쓰여지는 일이 있었다
찬장 위를 뒤져 보아도 칼과 나의 상관 같은 건 없었다
등과 이불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씻기고 말려지는 일
누워서 그런 일들이 해치워졌다
상관이 없어서일까 아주 오래 누워 있다 가끔 일어날 일이 있는 날에는
일어났다 가끔은
날들이 말 없이 서 있었다
지나가지도
다가오지도 않을 자세로
나를 향해 준비된 칼자루처럼
그러나 단수의 예고, 칼은 여전히 쉬고 싶었으며 이번엔 내가 일어나 있었다는 이야기라면
칼등을 눕혀 쥐었다
찬장에는 누가 비치는가
필자소개
김현수. 마산에서 시를 씁니다. 마산에서 시 모임 <시럽> 도 참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