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산마
<미키17> - “제가 어떻게 잘 넘어가는지 보아주세요.”
이 글은 <미키17>의 거시 측면을 얘기한다. 미키17의 클로즈업, 아득한 관짝의 거리처럼 하늘을 올려다본 시점 숏, 바스트 샷, 누운 채로 바스트 아래를 훑어보는 시점 숏, 부감인 동시에 평면처럼 찍힌 니샷, 조금 가까워진 관짝의 천장(하늘)에 나타나는 티모가 탄 탐사선. <미키17>의 오프닝 시퀀스가 미키17의 휴먼프린팅 과정을 평범한 문법으로 관객에게 직관시키고 있음을 언급하는 글이지만 말이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이 과정 역시 거시적이었을 확률이 크겠지만, 평범한.
0. 기질.
이 글의 논지는 올해 4월 영화의전당 했던 수업 [영화 작품들을 읽어내는 재미 : Shot분석-영화분석2]에서 수강생 선생님들과 나눴던 얘기를 거의 변경치 않고 가져온 것이다. 작품에 있어 포함된 작가의 ‘기질’을 얘기하는 것에 막힘이 없었던 그 수업은 즐거웠다. 솔직히 시네필들의 사적 대화에서 기질은 ‘그건 무시할 수 없는 것!’이란 느낌표를 동봉하며 대화의 이곳저곳을 누벼왔고, 상호간 영화를 권할 때도 작품성보다 먼저 고려되는 것이 ‘기질상 맞을지’인 것은 비밀도 아니다. 응당, 교류가 잦다보니 평론가인 동시에 개인의 입체성을 감각하게 되고, 우리는 국민주권국가에 사는 개인들이니 타인의 기질을 고려하는 것은 사실상의 덕목이다. 그럼에도 기질을 다룸에 있어 평론이 까다로워지는 건 세 가지 이유 정도 될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기질적인 부분을 표현한 인터뷰가 없다면 그 감독을 ‘인간적으로’ 알아야 한다. 기질은 외면화된 ‘취향’과 교집합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오해의 여지에 이따금씩 신경증적으로 점하려고 하는 ‘객관적 지위’를 잃을까봐 평론 글이 손 놓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빨래 털 듯 청명하게 털고 가는 게 좋다. 헌데, 봉준호가 기질을 표현한 인터뷰가 많다는 건 <미키17>마저 아는 사실일 테다. 그 기질의 일부가 미키18로 대변되는 ‘시니컬함’이며, 그 시니컬함이 ‘해피엔딩의 필요성에 대한 둔감’으로 나타난 부분은 한국의 많은 기성 시네필들과 봉준호의 교집합이라 할 만하다. 유구한 베스트 10 목록을 참고하라. 까다로울 게 없다.
1. 포 하모니.
개인적으로 <미키17>을 보면서 뿌듯했던 건, <기생충>(2019)의 라스트 시퀀스를 보면서 봉준호가 해피엔딩을 찍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봉준호가 찍는 해피엔딩이면 영화가 무슨 장르일까 했는데, ‘해피엔딩이면 역시 멜로영화 아닐까...?’ 단순무식하게 떠올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멜로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중학교 시절 누나가 비디오로 빌려온 <플란다스의 개>(2000)를 떠올린 것도 사실이다. 당시 성룡영화와 이연결영화만 보았지만 연애도 해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인텔리랍시고 가장인 아내에게 징징대던 그 놈팽이가 너무 싫으면서도 그에 비해 천사와 다름없는 놈팽이의 아내가 측은하여 두 사람이 키스라도 하는 장면이 나오길 바랐었다. 그 외에 봉준호 영화에서 각인된 멜로적 요소는 이제 40대가 되어서인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거의 ‘니플하임의 공벌레’를 찍은 <미키17>을 보며 내가 얼마나 놀랬을지, 앉은 자리에서 <미키17>을 두 번 보았다. 이 일련의 상상을 예언적중이란 자랑으로 생각할 분은 없겠지만, 이것 역시 올해 수강생 선생님들에게 하나하나 알려드린 사항이다. <기생충>의 라스트 시퀀스는 쇼트바이쇼트로 분석하며 봉준호가 어떻게 기우(최우식 분)의 꿈인 듯 아닌듯한 라스트 시퀀스를 찍었는지 쉽게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라스트 시퀀스가 시작되기 직전 기우의 아빠 기택(송강호 분)은 저택에 숨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데, 슬로우 모션에 부감으로 잡힌 그 쇼트에서 이미 기우의 웃음소리가 디제시스 사운드로 들려온다. 암전과 함께 시작되는 엔딩 시퀀스는 믿지 못할 말들의 연속이다. ‘형사 같지 않은 형사,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사람이 죽어나간 소동극에도 ‘말들은 많았지만 모두 운이 좋게, 집행유예’. 가장 믿지 못할 것은 그날따라 저택 주변에 더 머물고 싶었던 기우가 우연찮게 발견한 기택의 모스부호인데,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의 부호라고 하기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장문에다 시시콜콜하다. 그 어이없는 부호를 해석한 기우는 일단 돈을 벌 것이며, 못해도 수십억을 벌어야 살 수 있을 그 저택을 젊은 나이에 사서 기택과 재회하는 정념의 개꿈을 꾸고 <기생충>도 끝이 난다. 감독 본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찍고 만 <미키17>의 꿈 시퀀스와 유사한 <기생충>의 엔딩시퀀스는 논평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직접화법’의 형식이다. “죄도 아니고, 해피엔딩 정도는 꿈꿀 수 있다”. 포악하게 비유하자면, D.W. 그리피스가 현재까지도 상용되는 할리우드 문법의 초석을 마련한 <국가의 탄생>(1915)의 엔딩 시퀀스도 그렇게 끝이 난다. 기억해야하는 건 <국가의 탄생>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 예술을 위한 기원”이며, 그 영화로부터 일종의 할리우드의 대중예술 정신이 마련됐다는 것은 포악한 일반화의 오류지만, 유구한 할리우드 영화들이 택하고 마는 해피엔딩의 불가피성은 “For Harmony”라는 형식으로 <기생충>의 엔딩 시퀀스가 보여주는 직접화법의 형식과 맞닿는다.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쓴 건 그럴 만하다. 오스카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할리우드 영화의 보편정신이라고 할 만한 것에 타협 없이 가닿았으니, 오스카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행복했을 것이다.
2. 유일성과 복제성.
평소라면 하지 않을, <기생충>의 라스트 시퀀스를 보고 봉준호의 다음 영화를 예언해본 것은 정념의 형식이라 불러도 좋을 기우의 개꿈을 통해 정념에 휩싸였던 까닭이다. 당시 30대 중반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르바이트 2개를 소화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던 나로서는, “죄도 아니고, 해피엔딩 정도는 꿈꿀 수 있다”는 직접화법의 감상에 개인적 차원의 정념이 치솟았다. 그 사실을 부인할 생각이 없지만, 그 개인적 차원의 정념은 해피엔딩의 필요성에 대한 둔감 역시 일시에 허물어버린 것이다. 그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한데, 봉준호를 일부러 비인간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만든 쪽도 예상치 못한 ‘통속성’ 안에 자신이 포섭됨이, 당혹스럽고 기뻤으리라 추측했다. (여기서부터 ‘나’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생생했을 당혹감과 기쁨이 <미키17>과 나샤의 첫만남과 첫경험, 거의 무성영화처럼 순도 높은 감정의 ‘캠퍼스 러브 스토리’처럼 전개되었다면 과언인가. 그 순간이 내러티브라는 서사적 구조의 일관성에 눈치 보지 않고 자기만의 독립적인 지위와 감정의 층위를 살린 ‘단편성’의 조각화라는 것은 『필로 44호』 봉준호와의 인터뷰에서 필로의 필진들도 짚어내고 있다. 이건 전혀 비범한 지적이 아니다. 캡틴 마셜이 연설하는 식당에 존재하는 두 남녀와, (연설이란 디제시스 사운드가 이어지는 와중에) 어느 샌가 쪽방에서 섹스를 하는 두 남녀의 시제는 내러티브상 ‘멀티플’이다. 앞으로 <미키17>이 전개되면서 의미적으로 상쇄될 것은 봉준호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순도 높은 멜로, 그 ‘단편성의 감흥’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내러티브라는 작품 전체의 서사적 구조 혹은 작품 전반을 꿰어야만 성립되는 결정적 의미라는 ‘복제성’ 속에, 그 ‘유일성’의 감흥은 상쇄되거나 누락된다. 봉준호가 신입생 같은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 그 단편성의 조각화가 <미키17>의 ‘기둥’이라고 무한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은 그 유일성의 감흥이 최대한 상쇄되지 않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말일 뿐이다.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단편성의 조각화를 감각할 수 있는 기둥이자 ‘미학’이란 전통적인 기준점에 놓는다면, <미키17>에는 ‘정치’와 ‘윤리’라는 단편성의 조각화도 감지할 수 있다. <옥자>(2017)의 “옥자”는 무엇인가? 적어도 한 개인이 평생 소비할 돼지고기의 부피 혹은 지금껏 소비한 돼지고기의 부피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미키17>에서 “크리퍼”는 무엇인가? 한 개인이 평생 죽였을, 죽이게 될 벌레의 부피 혹은 “크리퍼 무리”는 죽였거나, 죽이게 될 숫자라고 할 수도 있다. ‘정치’에 기준점을 둔, 복제성에 상쇄돼지 않을 단편성의 조각화는 크리퍼와 크리퍼 무리의 ‘시청각적 바디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마마 크리퍼라는 데 마마를 찾고 싶은 음성을 지녔다던가, 우글대는 크리퍼 무리의 압도적인 숫자도 모자라 순간 똬리를 틀고 무주공산처럼 흩어졌다 다시 뭉치는 그 유일성의 감흥은 의미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윤리’에 기준점을 둔 단편성의 조각화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개인’의 주체성과 교집합을 이루며 발생하는 지점이기에, 시청각적 바디감보다 사유적인 바디감이 더 어울리긴 하다. 서문에서 <미키17>의 오프닝 시퀀스가 휴먼프린팅 과정을 평범한 문법으로 직관시킨다는 것을 언급한 건 그런 연윤데, 표현상 관짝 혹은 휴먼프린터 안의 미키17을 내려다보며 티모가 해맑게 던지는 질문은 “미키17은 무엇인가”와 연관된다. “미키, 있잖아,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휴먼프린팅이 주제이자 스포일러인 이 영화에 선제적으로 투영될 수 있는 영원 혹은 영속성의 삶이란 욕망 안에는, 2시간동안 미키17이 보여줄 영속성의 노동과 감정노동이 괄호쳐져있을 공산이 크기에, 티모의 질문은 뭐 그런 것이다. (‘있잖아, 정말 영원히 살고 싶긴 한 거야?’). 이 질문에 처음부터 공감할 수 있다면 <미키17>의 모든 과정이 비영원하기에 유일성을 가진 자기 이름, “미키 에반스”를 되찾는 단편적인 몸부림이라는 걸, ‘의식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다.
3. 포스트 모던 한
길게 할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 인터뷰를 뽑아도 봉준호의 인터뷰는 통속적이다. “제 색깔, 작품 곳곳에 있어요”(JTBC 인터뷰, 2025. 02. 09). <미키17>에 호의를 가진 쪽은 단편성의 감흥이 살아 있는 조각들은 좋지만 종합과 승화의 감동은 없다는 감상이고, 불호를 표하는 쪽은 종합과 승화의 감동이 없는데 조각들의 감흥이 무슨 소용이냐는 반응 같다. 이는 <미키17>이 단편성의 조각화라는 유일성의 감흥을 ‘통속성의 상황’들로 살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감상한 대로, 분산된 채로 말이다. 즉, <미키17>은 미학, 윤리, 정치라는 작품성의 기준점을 분산시켜 종합과 승화라는 ‘전통적인 비범성’을 확보하진 않지만, 분산된 유일성의 감흥을 최대한 살려 ‘전반적인 평범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형식을 만든다. 분명 비범하진 않지만 평범한 형식이라고 할 순 없고, 평범하진 않지만 비범한 형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형식은 <기생충>의 라스트 시퀀스와 대비되는 <미키17>의 꿈 시퀀스, 이 영화에서 가장 비범한 단편성의 조각화를 보여주지만 악몽에서 한낱 백일몽으로 끝나는 그 시퀀스에서 결국 ‘비(非)비범성의 형식’임을 드러낸다. “먹어봐. 너(미키17) 같은 무식한 단세포도 감동시켜야 진정한 걸작(master piece) 소스거든.” “넌(미키17) 필요 없어. 나의 최고의 미식가(captain Marshall)를 다시 데려오는 게 낫지.” “(미키)18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꺼져(fuck off).” 여기는 전통적인 비범성을 만드는 ‘매커니즘의 복제성’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가 있는 반면, 통속성일지언정 유일성의 감흥을 살리는 ‘분산된 형식성’을 취하겠다는 본능적인 의식도 있다. 분산된 형식성은 아직은 형식화되지 않은 형식일 것이며, 전통적인 비범성을 만드는 매커니즘에 대한 거부는 결국 비(非)비범성이란 색다른 감흥의 형식, 포스트 모던 ‘한’ 형식으로 이행을 생각게 한다. <미키17>의 ‘주제’는 이 범박한 글의 제목과 비슷할 것이다.
부록
이 글에서 사용하는 ‘직접화법’이란 개념은, 평론가 유운성의 『물듦: 상호감염의 미학』(2025.03.05, 미디어버스)에서 예술작품이 취하는 방향성의 동시대적 고찰로 유의미해보였기에 가져왔다. <미키17>을 연달아 2번 봤을 때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으며 수강생 선생님들과 <미키17>을 분석할 때는 이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라스트 시퀀스에서 데드타임을 활용한 직접화법의 형식을 보여주며 모던시네마의 포문을 연 감독은 로셀리니이며, <독일 영년>(1948), <스트롬볼리>(1950), <이탈리아 여행>(1954) 등에서는 감독뿐 아니라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의 영화’ 내에도 논평이 존재하지 않는다. 논평이 없다는 건 결정적 의미와 감독의 전반적인 의도, 작품 내에서 포착할 수 있는 ‘주제theme’가 없다는 것인데, 직접화법의 예술은 ‘논평 없는 화법’이 곧 주제theme기에 당연하다. 언어로 사유하는 우리의 사고체계와 문학과 문자언어에 비해 영화는 간접화법의 매체(parole의 문제)로서 지닌 가능성이 고찰되었고 후발매체로서 영화의 대중적 인정투쟁은 ‘간접화법적 구조(도입된 서사적 구조)’를 통해 이뤄졌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걸 모두 피해가고 있는 『물듦』은, 제2지구에서 쓰인 것인가 의문스러울 만큼 ‘영화 본위적 관점’이 탈구돼있다. 기본적으로 간접화법의 예술로 굳어진 영화의 동시대적 한계가 <미키17>의 악몽으로 재현되듯, 이 영화의 무대가 제2지구를 꿈꾸는 자들이 간 Science fiction인 건 흥미로워 보인다. 캡틴 마셜은 니플하임을 자신의 지지자들로 물들이기 위해 우주선을 띄웠고, 마셜의 아내는 지지자들도 모자라 니플하임의 원주민(크리퍼)들도 소스로 물들이려는 제2지구의 큰 살림꾼이다. 둘 다 불특정 다수를 ‘일방향’으로 물들이려는 방법 외에는 알지 못하는 클래식한 존재들인데, 공상과학소설을 써보자. 악몽 시퀀스에서 마셜의 아내가 말하는 ‘마스터 피스’를 간접화법의 대중예술영화(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이런 것이 평범함 속 비범함이 있는 주제입니다. 포 하모니!), 캡틴 마셜 같이 ‘최고의 미식가’만 맛볼 수 있는 걸작을 폐쇄적 간접화법의 예술영화라고 한다면 과장일까(작가인 제가 이런 것이 주제임을 은근히 말하고 있음을 당신은 은밀히 알아주셔야 합니다, 대중예술영화와 비교하진 마시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관객들에게 ‘일방향의 물들임’은 더 이상 논평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건 영화 본위적 관점을 취하는 시네필들도 (지겹게)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물듦』은 논평이 없어 작품을 상회한 논평도 이끌어내는 직접화법의 예술이 대중적 교섭이 이뤄지지 않은 형식임을 친밀히 짚고 가는데, 이미 『로베르토 로셀리니』(2004.06.30. 한나래)에서 동일한 저자는 <이탈리아 여행>이 ‘최초의 현대영화’임에도 “여전히 비평적 안목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감독들을 위한 영화”이며 대중들 간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분명히 함이 중요한 건, 로셀리니의 모던시네마가 타진한 가능성은 영화 바깥의 불특정 다수의 미지의 개인성에 대한 철저한 고려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영화 본위적 관점에서 영화가 세상과 다시 유의미한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고려되어야하지만(그 협력관계는 세상이 아니라 영화가 원하는 것이기에, 고다르는 로셀리니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까스로 유예한 영화 본위적 관점을 <네 멋대로 해라>에서 격파하며 시작했다), 그 고려는 영화 바깥의 현실이 아니라 ‘영화의 현실’을 바꿀 가능성을 잠재하기에 더 철저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결국 연속적인 고려라는 것은, 상호적인 고려이고, 상호방향의 물들임을 타진하는 『물듦』의 자유간접화법적인 주체성이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영화에 관심이 없는 개인성에 관한 상호감염적인 고려를 포함한다. 즉, 모던시네마 혹은 직접화법의 예술이 타진하는 개인성과 그 논평에 관한 고려(가 있었음을 고려) 없이, 더 이상 수용자가 아니라 ‘수요자’에 관한 상호감염적인 고려(가 이제라도 필요함을 고려) 없이, 창작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포스트모던시네마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일방향으로 물들일까, 물들여질까 하는 클래식한 논의에 불과하다. 당연히 “21세기 영화 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비평의 몰락”이었다는 봉준호의 소회는, 간접화법의 예술인 영화를 간접화법으로 증명해온 평론의 규격과 양식이 평론 기능의 대폭 축소와 연결되며 그것이 지울 수 없는 ‘개인성을 지운 결과’라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 이 글이 범박한 ‘나’로 도배되었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다. 그런 부분에서 봉준호의 <미키17>은 실패작이다. 현시대의 간접화법의 예술로서의 영화 매체뿐 아니라 비평 혹은 영화문화, 시네필문화의 한계도 암시하지만, 그 암시의 형식이 ‘시네필 본위의 관점’을 넘어서진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잘 넘어가는지 보여주지 말고 그냥 저지르면 됐을 것을. 『물듦』이 요청하는 자유간접화법적인 주체성은 반(反)간접화법이 아니라 회복될 만한 간접화법적 주체성과도 연관되어 보인다. 사람들이 물들기 싫어하는 ‘부정적인 것’이라면 간접화법의 급진화는 고려될 만한 것이다. 그건 계측적으로 보아야하는 게 아니라 간접화법의 영화라도 계측적으로 보아야함을 느꼈을 때 계측적으로 보는 일을 ‘할 만 한 일!’로 여기는 통속성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부록은 <미키17>에서 봉준호가 생각하는 유일하게 복제불가능한 존재, <기생충>부터 사라졌으며 그때의 상황, 형편, 경우를 고려하며 상호적인 의중마저 살피는 일을 통속성의 태도로 해왔던 (정치권에는 없어서 봉준호의 빡침 포인트가 되는) ‘살림꾼의 머리’를 가진 존재, 그 자유간접화법적인 주체성을 가진 존재에 대한 봉준호의 애착이 흩뿌려진 링크 이미지다(https://blog.naver.com/drunk30304/223923503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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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크리틱b 13호]에 실린 <미키>(2025)의 초고(이자 초안)입니다.
지면 [크리틱b 13호]에 실린 글과 '꽤 다른 글'이라 공유하는 것에 무방하다고 생각하여 업로드합니당 'ㅇ'
([크리틱b 13호]는 곧 판매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필자들에게 책이 왔거덩요 호호. '꽤 다른 글'도 봐주시면 감사 (_ _)~
⭐ 초고의 마지막 문장은, 네이버 블로그가 링크+문장을 소화하지 못해 저래 떨어트려놨는데, 걍 놔뒀슴다 'ㅇ'
[출처] <미키17>(2025)|작성자 Glory Kim
필자소개
김영광(영화평론가 '같은 것')

안부
신문에 영화 칼럼을 써요. 매달 한 편씩 쓰던 것을 올해부턴 두 달에 한 편씩 쓰고 있지요. 벌써 서른한 편을 썼고, 이번 주 수요일은 서른두 번째 글의 마감일이네요. 세어보니 벌써 40개월이나 되었어요. 많지는 않은 원고료이지만 늘 과분하게 받는 듯이 글을 써왔어요. 신문에 내 글이 실린다는 건 처음에나 지금에나 과분한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죠. 받는 것에 비해 너무 열심히 쓰는 것 같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요. 나의 노력이 사람들 눈에도 보이는구나 싶어서 좋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더없이 좋은 칭찬이에요. 나의 치열함이 고독하지 않았단 거니까요. 그때부터는 키보드를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뜯는 혼자만의 싸움도 더는 외롭지 않게 되었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해이하게 쓴다면 그 또한 사람들이 알아차릴 테죠. 그래서 적당히 타협하며 쉽게 쓰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자신하는 건 아니고요, 나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이자 선언이랄까요.
올해로 직장 생활 10년 차가 되었어요. 이름 앞에 붙는 마케터라는 직업이 이제야 좀 익숙해진 것 같아요. 스스로를 칼럼니스트라고 칭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야 할까요. 얼마가 되었든 돈을 버는 일이라면 프로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한 톨의 위안을 얻곤 합니다만,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옥죄어오는 것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네요.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신문 19면에는 쑥스러운 글과 함께 ‘전이섬 작가’라는 활자가 찍혀있어요. 글로 돈을 벌어 본 적은 있으니 이름 뒤에 ‘작가’라고 붙는 정도는 너무 쑥스러워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치만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고, 처음에나 지금에나 한결같이 어려운데요. 다들 이렇게 어렵게 쓰고 있는 건가요. 원래 글쓰기가 이런 건가요.
칼럼 하나를 완성하려면 머리를 네 번은 쥐어뜯어야 해요.
1. 처음엔 쓸 이야기가 무한할 줄 알았죠. 세상엔 이미 많은 명작이 있고, 나라마다 좋은 신작을 매년 만들어내니까요. 칼럼을 쓴 첫해엔 여러 국적, 여러 장르, 여러 시대를 넘나들며 글을 썼어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니 다음 해에는 영화를 고르는 게 조금 어려워졌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은 글을 쓰는 것만큼 영화를 고르는 게 어려워졌어요. 왜 세상 영화들은 모두 관계, 사랑, 성장, 상실로 귀결될까요. 나는 좀처럼 물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퍼내다 보면 글감이 말라버리는 저수지라는 걸 깨달았어요. 퍼내고 퍼내도 새롭게 차오르는 호수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2. 반한 적 있지만 사랑한 적은 없는 대상과 오랫동안 함께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나는 씨네필이라는 단어의 뜻도 여태 모르고 살았어요. 씨네는 영화… 필은 필기구 할 때의 필인가… 알아보니 필은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더군요. 나는 정말로 영화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게 맞나 봐요. 시네마 천국은 작년에야 보았고, 타이타닉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아카데미 후보작들은 한 해에 두 편만 봐도 많이 본 수준인 내가 감히 영화로 칼럼을 쓰다니요. 숨 쉬듯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런 생각을 해요. 머리를 쥐어뜯어서라도 영화 칼럼을 완성하는 게 한편으론 용하고 장하다고.
3. 사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과거의 나예요. 마감일이 다가왔는데 글이 잘 안 써질 땐 예전에 썼던 원고를 다시 읽어요.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웃기긴 한데요, 어떻게 이렇게 잘 썼나 싶을 때가 꽤 많아요. 내가 써놓고도 스스로 감탄하며 밑줄 치고 싶은 문장들도 꽤나 있고요. 그렇다면 나는 퇴화하고 있는 걸까요. 그치만 이번 달에 쓰는 원고도 내년에 다시 보면 탁월할 거라 믿어요. 지금의 고통은 사실 허상인지도 모르죠. 물론 당장은 실존하는 고통이지만요. 한편한편 글을 쓸수록 미래의 내가 이겨내야 할 적이 많아져요. 그 모든 과거의 나를 상대하고 나면 어쨌든 내 글은 자라있겠죠.
4. 결국, 글이 잘 안 써진단 이야기에요. 몇 달만 지나도 30분 만에 칼럼 하나를 뚝딱 쓸 수 있을 줄 알았죠. 첫 칼럼은 나흘 동안 총 8번 퇴고하며 완성했어요. 40개월이 지난 지금은 이틀 동안 4번 정도 퇴고를 거치죠. 이 정도면 그동안 들였던 양적 노력의 결실이라 볼 수도 있겠네요. 나도 모르게 내공이 쌓이고 있는 거라고 여겨도 될까요. 그치만 초안을 쓰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는 시간은 여전히 지난하고 고독하네요. 그래도 그만큼은 즐거워서 다행이고요. 어쨌든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단 생각으로 나를 위로해요. 언젠가, 오늘의 고백이 우스워질 날이 오면 좋겠네요.
웹진 산마에 글을 싣는 작가님들의 머리털은 안녕하신가요?
필자소개, 전이섬
퍼포먼스 마케터
영화로 칼럼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기타 등등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 : 혹시 올지도 모를, 혹은 미래가 없는
*영화 평론가로서 몇 편의 비디오 에세이와 한 편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어 봤을 뿐이다.
이것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정리하는 학자가 아님을 미리 밝힌다.
2015년, 유운성 평론가는 (현재는 잠정 중단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관해 발제한다. 그는 2002년에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관한 선구적인 두 개의 작품이 등장했다고 소개한다. 김홍준의 <나의 한국영화>와 김소영의 <황홀경>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들의 성과와 방법론이 현장 평론가들에게 공유되지 못한 점도 지적한다. 새로운 비평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유운성 평론가와 안건형 감독은 미디액트에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였고 과제물은 2016년까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된다. 2018년, 한국독립영화협회 제1회 독립영화비평상의 한 부문으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이 신설된다. 2021년에는 인디포럼을 통해 수상작들이 상영되기도 했다. 2022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이것에 관심을 보인다. 비디오 에세이에 관한 몇 번의 온라인 강연을 진행했고 ‘제1회 나도! 비디오 에세이스트’라는 공모전을 진행한다. 최근까지의 흐름에서 내가 언급되기 시작한 연도는 2018년이다. 이전의 역사는 모른 채 덤볐다. 전통을 잇는 적자는 아닌 셈이다.
2020년에 씨네21로 등단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한•독•협 공모전에 도전했다. 삼수 끝에 수상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현재 공모전에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 부문은 사라졌다. 내가 도전했을 때도 경쟁자는 없었다. 현재 나는 비디오 에세이스트일까?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한국영상자료원에 비디오 에세이 한 편을 출품했다.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라는 책의 2장 제목처럼 ‘비디오 비평가가 된다는 것’이 한국에서 가능할까?
우선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부터 알아보자. 그것은 영화 영상을 활용하는 비평의 한 형식이다. 너무 긴 이름 탓에 처음 들은 사람은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지레 겁부터 날 수도 있다. 용어의 정의를 들으면 그거 ‘영화 유튜버’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개명했는지 다들 ‘비디오 에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비디오 비평가가 된다면 그 모습은 영화 유튜버에 가까울까? 최근에 한 영화 유튜버가 올린 비디오 에세이를 보았다. 그는 영상에서 자신의 유튜브 스타일을 폐기처분했다. 그 역시 뭔가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짧아지고 모호해진 비디오 에세이란 용어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은 저 구름(Cloud) 위에 존재하며 당신의 컴퓨터로 내려올(다운로드) 기미가 점차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고 싶다면 – 시대를 역행하겠다면 - 대용량 외장하드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직전에 나는 한편의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었다.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대한 단상>이 그것이다. 홍상수의 <옥희의 영화>의 한 장면을 발췌하여 만든 이 영상에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이 처한 운명에 대해서 논한다. 그 운명이란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의 비가역적인 이행이다. 다운로드를 통해서 하드 디스크에 공간을 차지했던 영화는 이제 데이터를 차감시켜 소비되는 일종의 유령이 되어 각종 기기의 스크린을 떠도는 중이다. 영화를 다운로드해야 자르고 이어 붙여서 영상을 만들 터인데 그 개념조차도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영화 속 송 교수(문성근)의 대사처럼 책(text)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영화 비평을 꼭 영상으로 해야 하는가? 글이나 말로 이미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필모그래피가 풍부한 감독의 여러 작품 속 비슷한 장면을 추출해서 이어 붙이면 그것이 비평인가?
그렇게 봐줄 관객이나 크루가 당신에게 있는가?
글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면 되지 않나?
글을 그대로 옮긴 듯한 영상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 유튜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그 비디오 에세이에서 사라진 것은 내레이션이다. 영화 유튜버가 만들어내는 것은 ‘말’이다. 영상을 굳이 안 보고 듣기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 나쁘냐? 생존을 위해선 필수적이다. 영화 비평 시장에서 최종심급인 말은 팟캐스트, GV, 강연 등으로 확장되며 시장성을 확보하는 언어다. 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글이 선행된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비디오 에세이는 어떠한가? 비디오 에세이의 기본 언어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 새로움을 찾고자 한다면 글과 말에서 멀어지는 것밖엔 답이 없다. 멀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글과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디어학자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문자가 등장하면서 세상은 선형적, 논리적 사유를 하게 되었고 모든 것은 이제 문자를 거쳐서 사유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적 이미지’를 우선 텍스트로 개념화되고 기계 장치에 의해서 추상화되어 도출된 이미지라 설명한다. 그 예 중 하나가 영화다. 영화 역시 글(시나리오)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글로 비평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비디오 에세이를 남이 어떻게 만드는지 본 적이 없어서 단언할 수 없지만 추측건대 글로 먼저 정리하고 필요한 장면들을 영화에서 추출하여 이어 붙일 것 같다. 나는 기술적 이미지인 영화 자체를 가지고 바로 편집 프로그램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한다. 이미지 자체가 언어가 되어야 새로운 틈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빌렘 플루서가 구분한 시대 중 ‘이미지 시대’의 감각을 복원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시대, 이른바 선사시대엔 세상을 즉각적으로 추상화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비체계적, 비논리적, 감각적, 순환적 사유를 했다는 것이다. 본 것을 동굴 벽에 새겼던 선사시대. 비디오 에세이는 남의 동굴에 들어가 벽에 있는 그림을 뜯어다 자신의 동굴에 붙이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영화 이미지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비평일지라도 모습은 영화에 가까워진다. 이런 시도를 감행해도 우리는 글과 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이미지에 주석을 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서 새로운 사유를 끌어내고 싶다면 (그것이 비록 감각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일지라도) 이 방법뿐 일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한 폭에 담아내면 ‘브리콜라주’가 된다. 브리콜라주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말한 개념으로 원래 의도나 맥락에서 벗어나 사물들을 새롭게 활용하거나 배치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브리콜라주를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서 수평으로 늘어놓으면 ‘몽타주’가 된다. 여기서부터 인용을 넘어선다. 생각해볼 문제는 영화를 비평할 때 장면 인용을 못 해서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냐는 것이다. 인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변형해야 미래가 열린다.
인용을 한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가 우리를 가로막는다. 개인적으로 저작권을 클리어하는 방법을 모른다. 공정이용이라고 우기기엔 세상은 철저히 자본주의다. 프로그래머나 기획자의 눈에 띄지 않는 이상 상영 기회를 얻을 수 없다. 그런 것에 반기를 들고 대안적인 형태로 영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을 모를뿐더러 그들의 구미를 당길 영상이 내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증의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비디오 에세이) 분야에 선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화 이미지를 인용하지 않고 영상으로 영화 비평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여 <영상자료원 가는 길>이라는 에세이 영화를 작년부터 실험삼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의 트렌드(노스탤지어와 재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팬데믹 시기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영화는 제2회 성북청춘불패영화제 단편경쟁 본선에 진출하는 영광을 얻었다. (영화는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다.) 그것은 비디오 에세이에서 에세이 영화로의 확장이다. 비디오 에세이 작업에 에세이 영화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해 있다.
그렇다고 에세이 영화가 비디오 에세이의 미래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출구전략이다. 나는 아이폰과 아이무비로 최소한의 버전을 만든 셈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하지 않는다. 요즘은 영화 연출을 전공한 평론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들이 추앙하는 고다르가 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고다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잘 팔린다. K-고다르를 꿈꾸는 것은 욕먹기 딱 좋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에 무덤덤하다. 비디오 에세이 자체가 그런 것이다. 이것은 고다르를 잘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고다르를 뛰어넘으려는 작업이다. 못 넘어도 먼저 만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하자.
본인이 오리지널한 이야기로 승부를 보겠다면 영화를 찍으면 된다. 나는 그러한 욕망이 없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생각에 관심이 있는 영화평론가다. ‘영화평론가’ 이 하나를 알리는 것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이 영상화되면 어떤 형태일까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싶다. 길게 돌아왔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다. 비디오 에세이의 미래는 한국에 없다. 정확히는 그 미래가 내겐 열리지 않은 것 같다. 막다른 길에서 이 분야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나의 영화적 몸짓을 부려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두 개의 트랙(비디오 에세이와 에세이 영화)으로 작업을 비정기적으로 이어 나가려고 한다.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이 글을 읽고 힘을 내어 비디오 에세이의 재목이 등장하길 희망한다.
필자소개
영화평론가 오진우
https://www.instagram.com/jinu_montage
*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오진우의 신작 비디오에세이 <HONG SANG-SOO : GRAVITY AND GRACAE>(2025 | 17분 32초)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청소년기에, 이른 청년기에 영화에서 무언가 대단한 걸 보았다고 착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착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몸이 먼저 뒤흔들렸기 때문에 그 확신에 따로 근거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엄청난 걸 발견한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영화관에는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거기 버티고 앉아 있기만 해도, 삶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혜안 같은 걸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믿음 때문에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등한시하고 꽤 오랫동안 영화관을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거의 가지 않는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 책의 편집인은 내 청년기의 이러한 행적, 혹은 궤적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세대를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아무개 씨네필들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고, 또 사라졌기 때문에 이런 닳고 닳은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M다시보기> 창간호에 원고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필자 소개란에 이렇게 썼다. “한때 의미를 구하러 영화관에 다녔다. 요사이에는 무의미를 수용하는 법을 배우러 어디든 다닌다.” 그리고 이 필자 소개가 들어가 있던 원고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트뤼포의 말처럼 ‘씨네필은 아픈 사람들(film lovers are sick people)’이다. 현실의 땅에 발이 잘 붙지 않아 세상을 유령처럼 떠돌다 객석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게 된 사람들이다.” 시네마테크에 처박혀 지내던 시기에 나는 외부자극에 극도로 민감한, 병든 인간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자극마저도 그때 내 병든 몸과 마음을 통과하고 나면 나를 공격하는 자극으로 잘못 해석되기 일쑤였고, 고장난 신경계는 맹렬한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켰다. 짐승과 같이 즉각적으로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신경계에 종속된 일상 속에서 내 정신은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충동과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은 충동, 양쪽으로 팽창했다. 그 지독한 공격성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 악몽이 이어지던 시기엔 잠깐 정신을 놓치면 피로 칠갑된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나는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고 꽤 오랫동안 잠행했다. 그 잠행의 주무대가 시네마테크였다.
처음 시네마테크를 오가기 시작하던 때, 나는 당시 안고 있던 불안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영화들에 빠져 있었다. 니콜라스 뢰그의 <지금 보면 안 돼>, 클로드 샤브롤의 <파멸>,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같은 영화들은 폭력으로 오염된 이미지들을 숨 쉬듯 상상하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내 정신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불안감을 닮은 영화들을 관찰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나를 불안감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표현물과 가까이 있을 때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 표현들을 확인하는 작업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불안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따금 영화가 제공해 주는 그러한 안정감은 짧게나마 의식의 과한 긴장 상태를 이완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는 그 이완의 찰나에 외부자극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는 내 정신의 불안정성을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자각은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번번이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런 맑은 자각의 순간이 휘발되지 않고 지속되기를 갈망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내적 갈등과 그로 인한 혼란이 일순간 가라앉는 그 찰나의 체험을 반복해서 경험하기 위해 몇 년을 그렇게 영화관을 들락거렸다. 나쁜 병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민간요법에 빠져 지내는 사람처럼, 사이비 종교의 신자처럼.
나 또한 “현실의 땅에 발이 잘 붙지 않아 세상을 유령처럼 떠돌다 객석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강렬한 느낌을 통해 현실의 땅과의 ‘차이’를 보증해주던 시네마테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거처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만큼은 스스로를 해칠 가능성과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모두 사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게는 그 공간을 올바르게 사유할 능력이 없었다. 그곳에서 얻은 느낌의 세계를 언어-개념을 통해 번역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번번이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관이라는 세속적 공간을 형이상학적 공간으로 여긴 것이다. 구호품을 싣고 온 서구의 화물선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해석했다던 뉴기니의 원주민들처럼. 그렇게 공간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에 나는 당시 내가 안고 있던 문제를 영화관에서 해결하지 못했다. 자살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영화관에서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특별한 영화들은 내 시선을 덮어 가리던 나쁜 언어의 안개를 걷고, 현실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찰나를 만들어줬다.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반다의 방>이었다. 그 영화를 보던 날 나는 그가 보여준 폐허의 풍경 앞에서 지독히 견디고 견뎠다. 철거되는 마을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집, 숨결이 붙어있는 것 같지도 않은 사람들의 몸, 서로에게 닿기 위해 발화되었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고 빗겨나가 방 안을 떠도는 그들의 말, 그리고 그들을 질식시킬 것 같은 방 안의 불길한 소음. 나는 그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다 동원해 그 영화가 어떤 것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내 안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스크린에 대한 응시를 철회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었다. 그 견딤의 시간 속에서 당시 내가 앓고 있던 신체적 질환과 정신적 질환은 더욱 날카롭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영화관에서 경험한 최악의 고통을 그날의 견딤 속에서 겪었다. 결국 욕지기가 치밀었다. 극장 안에서 의미도 알 수 없는 말들을 욕설과 함께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화 상영이 끝날 때쯤 그 중얼거림의 내용이 선명하게 관찰되었다. 나는 유년기에 겪은 최악의 일에 대해 지껄이고 있었다. 타인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한 번 소리 내어 말해본 적 없던 묻어 놓은 기억을 작지만, 소리 내어 지껄이고 있었다. 이상한 경험이었고,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게 영화로부터 비롯된 반응인지 컨디션 난조에서 비롯된 증상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내 사유 능력으로는 접근이 불가능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 곧바로 페드로 코스타가 씨네21과 가졌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쁜 것을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때, 어쩌면 페드로 코스타가 관객(나)의 잠재된 고통을 계획적으로 불거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믿었다. 그때 나는 그를 통해 한 작가가 타자의 고통을 수용자에게 윤리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과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체험하는 것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경유해 다른 이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체험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잘 알아차리는 것이 타자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했고, ‘나’ 바깥의 세계를 극도로 두려운 대상으로만 놓아두었던 내 의식에 어떤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이러한 자각의 순간들을 반복해 겪으면서 더 이상 살아가야 하는 이유 따위를 찾지 않게 됐다. 여전히 가끔 허무감에 빠지고,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있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정신의 하강까지도 일상에 포함되어 있음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까지 배우고 나는 영화관을 떠났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아차리기 위해 요가 수련을 하거나 명상 서적을 뒤적거리며 지냈다. 영화관에서 스쳐 지나갔던 맑은 자각과 깊은 고요의 순간들을 일상에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올해는 동양철학자 한형조 선생님의 금강경 해설서에서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가 영어단어 지각perception의 어원을 살피다 ‘덮어씌우다’라는 의미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외부 세계에 부정을 덧씌우는 질병을 가진 나에게 ‘지각’과 ‘덮어씌우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발견을 곱씹던 중, 내가 과거에 이러한 가르침을 이미 받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영화관이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위시한 많은 모던시네마들은 언어가 이미지에 덮어씌워 놓은 부당한 혐의들을 벗기고,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했었다. 나는 그 영화들을 힘겹게 견디는 과정에서 이따금 맞닥뜨렸던 맑은 ‘이미지 산책’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에드워드 콘즈의 발견과 영화적 체험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연상의 과정을 관찰하면서 ‘무의미를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이, 명상에 대한 공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이미 싹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제야 나는 시네마테크를 들락거리다 명상(혹은 이완반응)에 빠져든 나 자신의 행적을 얼마간 깨끗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그러한 삶의 궤적이 변절이나 곡절이 아니라 순환의 선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지난 호에 보냈던 필자 소개를 바로 잡으며 이 글을 맺고 싶다. 나는 “한때 의미를 구하러 영화관에 다녔고, 구하던 것을 구했다. 요사이에는 무의미를 수용하는 법을 배우러 어디든 다닌다.”
필자소개
성동욱
그날
강연 초청을 받아 대전아트시네마에 처음 방문한 것은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그날을 여전히 나는 정확히, 그리고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건 특별히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그날이 바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강연이 기억에 선명한 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강연을 들으러 온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총연출을 맡은 개막식은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저런 소문을 흘리며 이미 상당한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그가 다시 한번 총연출을 맡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가 <귀주 이야기>를 만들던 이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는지 익히 알고 있다 해도, 장이머우의 영화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라고 해도, 그의 작업에 아예 무관심을 가장하는 게 아직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던 때다. 그래서 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보느라 사람들이 아무도 강연에 오지 않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단 걸 머지않아 나는 깨닫게 된다. 그저 대전아트시네마는 여간해선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 곳이었던 거다.
좀 기이하긴 하지만 영화가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종종 이런 식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꼭 내게만 국한된 일일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대학 신입생으로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보낸 직후인 어느 가을날 오후, 학생회관 입구에 붙은 ‘동유럽 영화제’라는 조잡한 광고 전단에 끌려 찾아갔던 비디오 녹화물 상영실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상영실 앞 복도에는 카탈로그 몇 권을 올려두고 판매하는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 놓인 의자에 남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누가 드나드는지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다. 상영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혼자 두산 마카베예프의 <WR: 유기체의 신비>를 보았다. 정말 그날 혼자 영화를 보았는지 사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그날 혼자 영화를 보았다고 말해줄 이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뿐이다. 몇 개월 후 나는 이 상영회를 기획했던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고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활동했다. 동아리에서는 매년 이런저런 상영회를 기획해 행사를 진행했지만 여간해선 사람이 잘 모이지 않았다. 특히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만든 단편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자리에는 내부자와 지인 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을 무렵이다. 약간의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어 자막이 들어간 16mm 필름들을 무상으로 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총학생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 학내 영화 시사실 사용 허락을 받아냈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담당자를 찾아가 총학생회 명의로 16mm 필름 대여를 신청했다. 처음 대여해 상영한 영화는 이치가와 곤의 <버마의 하프>와 야마나카 사다오의 <백만량의 항아리>였는데 그날 상영관을 찾은 관객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단 네 명이었다. 그나마도 두 번째 주부터는 아예 찾는 이가 없어서 결국 대부분의 영화는 상영회를 함께 꾸린 친구들과 두서넛이 모여 우리끼리 보게 되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여현>, 우치다 도무의 <기아해협>, 마키노 마사히로의 <일본협객전>, 가토 다이의 <그리운 어머니(瞼の母)> 등이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본 영화들이다. 우라야마 기리오의 <큐폴라가 있는 거리>와 <내가 버린 여자>를 나란히 본 날에는 그때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굉장한 작가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이는 단 두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강연 초청을 받아 대전아트시네마를 처음 찾았던 그날은 이처럼 지극히 영화적인 그날들 가운데 하나다. 어쩐지 수상쩍은 느낌을 주는 ‘영화적’이란 표현을 구태여 여기서 쓴 이유는 예정된 모임의 실패가 열어주는 우연한 만남의 가능성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자신의 둘레를 이러한 가능성으로 물들인다. 물론 만남은 일단 가능성으로만 주어지는 것이기에 모임처럼 실패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만남이 꼭 그날 곧바로 이루어지리란 법도 없다. 이를테면, 나는 영화 동아리에 가입해 한동안 활동하고 나서야 마카베예프의 영화를 혼자 보았던 그날 어떤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는 동안 매주 계속되었던 실패의 그날들이 어떤 만남들이기도 했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뒤에야 깨달았다. 그날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는 현재 그의 고향에서 영사기사로 근무 중인데, 익명과 별명과 이명 뒤에 숨어 비공식적으로 하는 활동이 적지 않다. 지인이 운영하는 한 영화 수입사의 영화 선정과 계약을 돕는다거나, 지역에서 이런저런 상영회를 꾸리고 자막 번역을 직접 도맡아 하기도 한다. 그는 고향의 오래된 영화관에서 그날 우리가 발견한 우라야마 기리오의 영화들을 다시 상영한 적도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미클로시 얀초의 <붉은 시편>을 오랜만에 복원판으로 다시 보다가 자막 번역자로 적혀 있는 별명을 보고는 그 친구가 최근 벌인 음모를 알아차리기도 했다. 지극히 리베트적인 음모, 영화적인 것은 그러한 음모의 주변에서 배후자들과 더불어 활성화된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 그를 찾아 근황을 묻고 식사를 하고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도 우리는 제각기 나름대로 실패할 가능성이 큰 모임을 거듭해서 꾸릴 것이다.
대전아트시네마에서의 그날은 어떤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는가? 사실 그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다. 강민구 대표와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극장 스태프, 그리고 나는 작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나는 준비해 간 강연 원고를 들고 두 사람을 상대로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했고 두 사람은 내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해 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극장 인근의 어느 식당으로 가 닭볶음탕에 약간의 술을 곁들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정말이지 기억에 없다. 다만 우리가 나누지 않았던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것들이었는지는 기억한다. 우린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우린 독립예술영화관을 좀처럼 찾지 않는 관객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우린 그날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대전에서 어떤 활동을 해 왔고 어떻게 예술영화관을 운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강민구 대표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의 이력 대부분을 나는 시간이 좀 지나서야 다른 이들을 통해, 혹은 이런저런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대전아트시네마를 찾은 관객들의 기억은 훗날 서이제의 단편소설 「0%를 향하여」 같은 글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의미심장한 만남이 이루어졌던 자리로 그날을 기억하지 않는다. 으레 그렇듯 만남은 유예되었고 그저 하나의 가능성이 열렸을 뿐이다. 이처럼 자신의 이력을 좀처럼 ‘업적’으로 과장하지 않는 사람과는 분명 언젠가 만남을 이루게 되리라는 예감이나 그런 만남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언제부턴가 나는 거의 매년 대전아트시네마를 찾게 된다. 대개는 강연 자리에 초청받아 가는 것이지만 이따금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있다. 이곳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관객들 몇몇과는 이제 친구가 되기도 했다. 허락도 없이 실명을 밝히는 것은 기왕에 밝혀 버린 강민구 대표를 제외하곤 다소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여하간 이들은 모두 그와 어떤 퇴연(退然)함의 자세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곳에서 완연함이 요구되는 주목 경제의 시대에 퇴연함은 결코 선호되는 미덕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관의 사람들은 집단으로서의 관객이란 마케팅 전략 같은 것으로 ‘끌리는’ 존재가 아니라 퇴연한 자들의 성실함에 기대어 우연히 ‘만나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올해 여름과 가을에 건물 옥상에서 진행한 옥외 상영회가 인기를 끈 것에 가장 신기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철도영화제가 대전만이 아니라 타지에서 온 관객들로 북적인 이유를 여전히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만남은 유예되었지만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흐뭇하게 확인하면서, 나는 그날의 사진을 찾아 다시 들여다본다. 문득 내 기억 어딘가에 공백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대체 누구인가? 이 사진을 찍은 이와 나는 그날 잠깐 웃음을 교환하고 그저 지나쳐버렸을까, 아니면 만남을 이루는 데 이르렀을까? 이처럼 영화는 종종 이미지 뒤로 지나가지만,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가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모임을 계속해서 꾸리는 것은 그처럼 유예된 만남을 붙들기 위해서일 터다. ■
필자소개
유운성
영화평론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2004~2012) 및 문지문화원사이 기획부장(2012~2014)으로 일했다. 2016년에 영상전문지 <오큘로>를 창간, 현재까지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유령과 파수꾼들>(2018)과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2021)가 있고,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 주의, 스펙터클, 근대문화>(2023 출간 예정)를 번역했다
<사무원을 위한 영화>
홍상수의 <탑>에 붙이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2022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홍상수의 신작 <탑>을 보고 나온 직후였다. 두 명의 관객이 빠져나간 주말 오전의 텅 빈 극장에서 걸어 나온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물론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이렇게 외쳤다. 홍상수가 드디어 사무원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구나!
죽은 시간을 살아가다
솔직히 매일 같은 건물로 출입하고 이날이 그날 같고 그날이 저 날 같은 사무원의 일상으로 무슨 이야기를 만든다는 말인가. 사무원이 영화적인 대상으로 채택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무원의 시간에는 지나치게 데드타임이 많기 때문이다. 데드타임(dead-time, temps mort)은 서사 진행의 경제성이라는 관점에서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을 말하는데, 이런 시간을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픽션 영화가 ‘기다림’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인물은 여러 차례 시계를 들여다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흘끔거린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로 예정된 장소 앞을 서성인다. 이렇게 ‘기다림’에 대응하는 기호를 두세 개 나열하기만 해도 조금만 훈련된 관객이라면 인물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기다림’이 충분히 전달된 후에도 장면이 계속된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어떤 장면이 어떤 기호도 없이 지속된다면? 그는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지금 인물일까 배우일까? 애초에 배우가 프레임 속에 있다고 해서 완전히 인물이 될 수 있기는 한 걸까? ‘죽은 시간’은 서사에서 이탈하는 시간, 인물에게서 배우를 보는 시간, 프레임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안팎의 것들이 교통하는 시간이다.
홍상수는 애초에 배우가 인물의 껍데기를 반만 걸치게 하고 프레임 속으로 밀어 넣는다. 배우들은 홍상수가 촬영 당일 전해준 대사를 외워 연기하고 긴 대화는 한 테이크로 이어진다. <탑>의 대화는 정말이지 절룩거린다. 병수의 소개로 처음 만난 정수와 해옥은 병수가 사라지자 둘만 남아 어색해진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이 불편한 공기가 ‘첫 만남의 어색함’에 상응하는 기호처럼 느껴지다가, 침묵이 길어지면서 인물을 완전히 뒤집어쓰지 못한 배우의 연기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장면에서 정수와 박미소, 해옥과 이해영은 인물과 배우 사이에서 무엇으로도 고정되지 않는다. 대화가 매끄럽게 보이도록 자르고 이어붙이지 않는 홍상수의 긴 호흡은 ‘죽은 시간’ 속에서 프레임 안팎을 들고 나는 살아있는 무엇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사무원은 여기에 있다. 이야기가 되지 못해서 폐기된 시간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고정되지 않았기에 유령으로 살아가는 이들. 나는 그들을 사무원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수평으로 움직인다
영화 스크린은 가로로 길다. 처음 영화 필름이 대량생산되던 19세기 말 1.33:1의 비율이 채택된 이래 1.37:1, 1.66:1을 거쳐 시네마스코프(2.35:1), 비스타비전(1.85:1)이 등장하며 때로는 미학적인 선택으로, 대개는 상업적인 이유로 우위를 점하는 형식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변하지 않았던 한가지는 영화가 언제나 횡으로 넓은 스크린을 택했다는 것이다. 인물들이 북촌을 떠돌거나 파리를 떠돌거나, 목적 없이 떠도는 일이 잦았던 홍상수 영화의 움직임은 수평적 공간 안에서 조직된다. 그러다 <풀잎들>(2018)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인물이 등장하더니 <도망친 여자>(2020)에서는 비가시적이긴 하지만 2층의 공간이 언급되고, <탑>에 이르러 드디어 3층의 공간이 영화적 무대가 된 것이다. 수직은 사무원을 위한 것이다! 사무원은 대개 도심 중앙의 고층 건물에 상주하며 점심시간에 개미 떼처럼 쓸려 나왔다가 회귀하는 집단이다. 킹 비더의 1928년 작 <군중>의 빌딩 시퀀스는 사무원을 위한 기념비였다. 카메라는 뉴욕 거리의 군중을 보여주다가 고층 빌딩의 벽을 따라 수직으로 치솟고 창문을 통과해 사무실 안으로 진입하는데, 목적지는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놓인 책상에 앉은 한 사람의 사무원이다. 킹 비더가 보여주는 20세기 초의 사무원은 김기택의 시를 떠오르게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김기택의 시 <사무원>에서 인용
김기택 시인이 시집 『사무원』을 발표했던 1999년까지만 해도 사무원은 의자에 자아를 의탁한 인간이었다. 2023년의 사무원은 의자도 아니고 책상도 아니고, 정수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단단한 것에 기생하지 못한다. 사무원은 동시대의 인간군 중 그 누구보다도 흐물거리는 다중의 자아를 가진 인간이다. 사무원이라면 Alt+Tab을 번갈아 누르듯 쉽게 자아를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무원은 통근버스에 올라 넷플릭스를 열고 탕비실에서 커피를 휘저으며 오늘 할 일을 복기한다. 기안문을 몇 줄 쓰다 말고 사내 메신저에 답장하고, 엑셀을 열어 숫자를 고치면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남기는 인간이고, 점심을 먹으며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다. 사무원이 남은 일을 짊어지고 퇴근 버튼을 누를 때, 반투명한 여러 겹의 자아는 겹쳐 있다 흩어지고, 너무 투명해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무언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잠드는 여러 날의 밤이 이어진다.
홍상수 영화 속 인물은 일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홍상수가 언젠가 컨템포러리 관료제 영화를 만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관료제 영화는 관료제 인간들의 음모와 암투, 관료제 시스템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버무린 사회 고발 액션 스릴러 느와르가 아니다. 그런 영화는 단지 남자 배우들에게 슈트를 입히고 총을 들게 하려고 관료를 선택했을 뿐, 관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내가 기다려온 관료제 영화는 관료제를 구성하는 일개 인간들의 시간 감각, 공간 감각에 접합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홍상수는 관료제를 이해하는 유일한 감독이었다.
왜 하필 홍상수인가? 홍상수 영화에서 사무원을 본 적이 있는가? 매일 같은 장소로 출근해서 비슷한 형식으로 일을 하는 사무원을 위한 영화를 어떻게 노동석도 아니고, 김지운도 아니고, 홍상수가 만든다는 말인가? 홍상수 영화에는 노동하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홍상수는 늘 자전적인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홍상수 영화의 특징적인 인물들은 영화감독이거나 배우, 감독을 지망하는 이, 감독을 동경하는 이, 아무튼 감독과 감독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탑>에서 권해효가 연기한 병수가 다음 작품의 투자를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일종의 노동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일상적인 ‘직업인’의 감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홍상수의 영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생활’의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내가 아는 생활인의 냄새, 생활인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생활인들끼리는 아! 하면 어! 하는 일상성을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영화적 클리셰로 오염되지 않은 강력한 사실성을 돋보기처럼 세밀하게 연출하고, 그로 인해 저열한 욕망에 매달리는 주체, ‘진짜’ 현실의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세간의 생각과는 달리, 내게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창백했다. 그들은 걷는다. 술을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인간을 모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봉준호라면 송강호를 더 리얼한 경찰로 만들기 위해 짜장면을 먹였을 것이다. 그러나 <탑>에서 권해효는 병수가 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3층 건물을 오르는 동안 그는 병수였다가 미래의 병수인 것도 같았다가 병수의 껍데기를 벗은 권해효인 순간을 오간다. 그는 무엇으로 확정될 수 없는 존재다. 건물에 갇힌 채로 누구였다가 누구도 아니기를 반복하는 존재. 나는 여기에서도 사무원을 찾았다.
필자소개
김다영
: 8년차 사무원. 26층 건물의 17층에서 일하고 있다. 사무원으로서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서 사무원을 찾는다.
방치된 희망
〈지단, 21세기의 초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17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2005년 04월 23일 레알마드리드(H)와 비야레알(A)의 경기를 뛰는 지단에 대한 ‘영화적 초상’을 만드는 영화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적 없다. 다만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인 더글라스 고든이 〈24시간 사이코〉를 만들었고, 그 영화가 꽤 중요하다는 사실은 접한 바 있다. 서현석이 쓴 「사색하는 초상, 초상에 대한 사색」(서현석, 2011)에 의하면 이 영화에도 꽤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지단, 21세기의 초상〉의 영화/영상사적인 중요성과 의미에 크게 동하지 않는다. 내가 동하는 건 셀틱의 팬이었던 어린 더글라스 고든이 TV 수상기 앞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던 영웅의 모습이 나올 때를 두근거리며 기다렸다는 말이다. 비록 더글라스 고든의 영웅에 대한 기억과 〈지단, 21세기의 초상〉이 그리고자 했다는 노동하는 인간의 초상이라는 목적이 별 관계가 없음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2023년 01월, K리그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의 내가―세계의 선진 축구가 전술의 과도기를 겪고 있건 말건―유튜브에 ‘대구FC’를 검색하고 ‘세징야의 역사가 곧 대구의 역사!’같은 영상들을 재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단, 21세기의 초상〉이 인근의 영화관/미술관에서 상영을 하면 나는 보러갈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같은 기획으로 세징야를 촬영한다면, 나는 보러갈까? 당연히!
“어차피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니깐, 굳이 소란을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대구의 영화감독 Q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창작자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의 이름이 지역 ○○○ 대구 ○○○ 같은 것임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역과 대구의 이름으로 지원 받은 영화가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할 때 그 기준이 중앙, 곧 서울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우리는 지역이나 대구라는 이름으로, 중앙과 서울에 닿고자 하는 영화와 감독을 만들고 있다. 물론 이들 개개인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서울처럼 영화과가 없으니까. 부재하는 대학 교육을 보충할 수단을 찾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합당하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창작자가 대다수고, (기회가 되면 서울에서…) 영화제의 한국영화 섹션이 수 년 동안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문화 공공성의 관점에서 지역에 투여된 (물질적/담론적) 자원이 가치 고하와 별개로 서울과 시장이라는 커리어패스로 소비된다. ‘지역영화’도 ‘독립영화’도 모두 각각이 표방하는 가치와 멀어진다.
“아마추어로 하여금 영화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주라. 매너리즘에 빠진 영화계에 자극을 주는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아마추어리즘인 것이다.” (이어령, 「영화예술의 향상책」, 『경향신문』, 1967.04.19.)
최근 몇 년간 문학·미술·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평자들은 ‘아마추어리즘’을 말했다. ‘지역영화’도 ‘독립영화’도 모두 하나의 ‘아마추어리즘’이었을 것이다. 그들 각각의 의미야 다르겠지만 ‘아마추어리즘’은 언제나 제도의 용적을 초과하는 힘들에 의해서 말해졌다. 제도의 보수(補修)를 요구하건 더욱 급진적인 세계의 변혁을 요구하건(최악은 제도 비판을 제도 입장의 제물로 삼는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은 제도가 고인물이라는 감각에 의해서 말해진다. 내가 여러 군데에서 지역영화를 말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많은 영화들을 ‘영화’로 소개하는 제도들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지금’과 ‘우리’라는 교묘한 단어를 무턱대고 사용해보자면―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감각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이 불만족, 불안감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중요하다. 이동하는 게 아니라 머물러야 한다. 이 머무름의 끝에서 단지 지역의 랜드마크가 기입되는데 그치지 않은 성질로서 ‘지역영화’라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쑨거에 따르면 1950년대 말 미국 지리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각 지역의 독특한 상태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 모든 지역이 공유하는 지리적 특징을 수집해야하는지 여부였다. 이 논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러왔다. “특수성의 상태로 재현된 대상이 일반적 규칙으로 다듬어지거나 추상화되지 않은 채 여러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때 리처드 하트숀은 유사성에 대해 인습과 다른 정의를 내리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가 정의하는 유사성은 “서로 비슷한 지엽적인 부분을 쳐낸 후 남은 주요 차이”였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유사성은 “서로 비슷한 성질”인데, 유사성이 바로 차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떻게 특수성들 속의 차이가 우리를 연결하는 보편적 고리가 될 수 있을까. 좋고 나쁨, 옳음과 그름을 구분하고 분별하지 않는 기준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정지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KMDb)
그러므로 중요한 건 다른 재미다. 고백하자면 지난 달 2022년 12월 인디포럼의 기획전 “독립영화하다”의 ‘자주영화’ 섹션은 나에게 하나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아마추어리즘’과 ‘자주영화’를 말해왔지만, 비전문배우의 연기와 얼굴을 (공동체 상영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다름을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조악함’으로 퉁 치지 않고 숙고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든다. 올해 고다르, 스트라우브, 요시다 기쥬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문화로서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문화로서 영화의 죽음을 말할 만큼, 많은 영화와 상영과 프로그램을 했을까? 공동체와 공동체 바깥. 그것을 보존하면서도 가로지르는 것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필자소개
금동현